지금도 십여 년 전의 그 순간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밤이면 몇 번씩 깨어서 울던 아이. 그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며 재우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잠을 못 자서야 과연 낮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고, 언제까지 아이를 안고 한밤중에 거실을 돌아야 하나 앞이 캄캄했죠. 설핏 잠든 아가의 얼굴은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잠을 못 잔 저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짜증이 나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참 부족하구나.' 아이에게 부모의 표정이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하고 죄책감도 가져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짜증은 더 커졌습니다. 죄책감은 오히려 아이를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내 바닥을 본다고 생각하니 어린 시절 내 약점을 공격하던 친구에게 그랬듯 화가 나더군요.
화가 나고 답답해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를 노려보고 있다 보니 갑자기 '이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르겠구나.' 싶었습니다. 자기도 답답한데 방법은 없고, 그냥 우는 것 말고는 이 조그만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이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회에서는 소아정신과 의사라고 불러주지만 자기 감정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약한 존재가 바로 ‘나’였습니다. 나도 아이도 그처럼 약한 존재,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눈물이 조금 났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편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아이의 수준을 인정하자, 또 내 수준도 인정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못난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그렇지만 더 잘해 보려는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해 보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버겁다면 조금 뒤로 미뤄도 괜찮다. 우선 나를 지켜야 더 오래 나와 아이를 사랑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기보다 부족한 자신을 원망하느라 시간을 다 보냅니다.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쓰지 않고 자신을 탓하느라 시간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부족한 것이 바로 ‘나’인데 원망해봐야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 나를 인정하고, 하나라도 더 내게 채워주려 하면 됩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스스로에게 잘 하려고 할 때 아이도 자기를 사랑하기에 더 발전하고 싶어 합니다.
첫 책이 나오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부모들에게 늘 해오듯 꾸준히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이 또 한 권의 책으로 묶였군요. 첫 책이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철학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공부, 사춘기 등 더 큰 아이들을 키울 때의 고민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시 책을 내기로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책의 형식이었습니다. '좀 더 호흡이 긴 글로 묶어서 책을 낼까? 아니면 부모들이 쉽게 읽고, 한 번쯤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는 책을 낼까?' 비슷한 형식으로 책을 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번에도 제 선택은 같았습니다. 언제든 부담 없이 펴서 몇 장을 읽을 수 있는 책, 그러면서 아이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제가 바라는 책입니다. 그렇잖아도 버거운 육아에 책 읽는 부담까지 얹어주고 싶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전보다는 더 길게, 충분한 내용을 적으려 욕심을 냈고 그래서 책이 전보다 조금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이 책이 그저 부모들의 힘든 시간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아이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제겐 과분한 기쁨일 것입니다.
2013년 5월
서천석
* '작가의 말'에 쓰지 못했는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준 박보미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책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박 작가의 역할이 무척 큽니다. 아울러 창비의 씩씩하고 섬세한 편집자 이하림 씨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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